단지(斷指) 결의를 새기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

J. Kuhn J. Kuhn
Ahn Jung-geun Memorial Hall, D·LIM architects D·LIM architects Espacios comercia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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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서거 100주년, 일제강점기 100주년이 되던 2010년. 남산 도서관 옆 기존의 구관을 철거하고 새로이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건축되었다. 기념관이 자리 잡은 대지 주변은 일제 강점기의 조선신사 터로 60여 년 신사참배를 종용받던 곳이다. 그곳에 안중근 의사의 영정을 모시는 기념관을 건립함으로써 치욕을 딛고 일어서 새로운 역사를 새긴다는 의미를 부여했다. 

기념관은 사건이나 인물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상징적인 공간인 동시에 공개 관람이 진행되는 공공장소기도 하다. 추모와 관람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모두 충족하며 두 성격의 균형을 유지하는 건축물을 설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 디림건축에서 설계한 이 건축물은 기념의 대상을 관람객에게 상기시키되 화려하고 번잡한 전시물로 주입하기 보다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들려주며 발을 잡아끄는 기념관이다. 교과서적인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관람객 스스로 생각하고 오늘날의 우리를 재조명하는 사색의 공간이 되고자 하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 그 다양한 면모를 지금 소개한다.

남산 한 자락 12개의 매스

남산 한 자락 나무숲 사이로 조용하고 단아한 자태의 기념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대지 하부의 흙을 기념관의 체적만큼 들어내어 대지와 건물을 일체화시켰다.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컴팩트한 형태의 기념관은 주변 자연환경을 내리누르는 웅장한 건축물이 아니라 그것과 함께 호흡하고 조화를 이루며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로 35m, 세로 49m의 직사각형 대지 안에는 12개의 기둥이 자리한다. ‘12’라는 숫자는 무명지를 끊고 대한독립을 맹세했던 12인의 단지동맹을 상징한다. 1909년 자신의 무명지를 끊고 대한독립을 맹세했던 그들 속에서 안중근 의사를 재조명하는 동시에 그와 뜻을 함께한 11명의 의인이 더 있었다는 것을 부각하는 구조이다.

부드러운 카리스마

엄숙하고 장엄한 형태의 고답적 기념관과 거리가 먼 파격적인 디자인을 선보였다.  최대한 장식을 배제하고 반듯하고 단정한 이미지를 표현하며 자신을 드러내며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건물이다. 

외부에서 건물을 바라보면 반투명 재질의 유리 외관이 눈길을 끈다. 최대한 자연스럽고 의연한 연출을 위해 이중 U형 유리인 '유글라스'를 소재로 해 남산과 건축물을 위화감 없이 융화시키는 매개체로 활용했다. 반투명 질감으로 주변 고목들의 푸르름과 함께 단아하고 깨끗한 느낌을 선사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표현한다.

밤에 보는 기념관

반투명한 유글래스는 낮에는 내부의 윤곽을 그려내는 부드러운 질감으로 보이지만  밤에는 은은하게 빛을 내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건물을 둘러싼 수로에 흐르는 물 위로 건물의 그림자가 떠오르면, 낮과는 또 다른 화려함을 볼 수 있다. 12개 매스 중 유일하게 투명한 마지막 동을 중점으로 늘어선 건물들이 전시 일정을 마감한 저녁 시간이 되면 전시관의 단정한 모습을 벗고 시민들에게 남산의 자연 속 아름다운 야경을 선사한다. 

매스 사이 공간

정면 기준으로 4행 3열로 늘어선 12개의 매스들은 그 기둥 조형을 강조하기 위해 기둥 사이에 투명한 전창이 끼워져 있다. 외관은 각각의 동으로 나뉘어져 보이지만 내부에 들어가면 한 공간으로 느껴지도록 하며, 전시 관람 중간 중간 남산의 절경을 담아내는 창이 되기도 한다. 관람객은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에 집중하다가도 이내 눈을 돌려 현재의 모습을 둘러보게 된다. 과거와 현재를 오고가는 중에 유리에 비친 내 모습도 보인다. 관람객에게 가르치고 설득하고 감동을 주는 것보다는 무심하게 질문을 던져놓고 스스로 생각하기를 요구하는 건축물이다.

명상의 길과 경계의 못

이 건물은 정면에서 입구가 보이지 않는다. 건물을 바라보며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내려가게 된다. 길을 따라가다 보면 남산의 풍경이 하나둘씩 시야에서 사라지고 우측으로 박막의 벽천에 안중근 의사의 유묵과 어록이 새겨져 있는 '경계의 못'을 만나게 된다. 안중근 의사의 무명지가 잘린 손도장을 보고 어록을 읽다 보면 어느새 입구에 다다른다. '명상의 길'이라 불리는 이 진입로는 역사적 기념관인 만큼 관람객에게 입구에 들어서기 전에 한 박자 숨을 고른 후 몸과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도록 하는 배려의 공간이다.

입구에 나타나는 홀

입구에 들어서면 전시공간 진입 전 홀이 나온다. 1층부터 상층으로 올라가며 관람하도록 설계된 전시 동선을 따라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관람객의 시야를 위해 눈높이에 맞춰 중앙홀의 벽면이 절개된 모습을 볼 수 있다. 홀은 여백을 살려 비워놓고 천장은 높게 설계해 빛이 강하고 넓게 아래로 떨어진다. 국가 위인의 기념관 입구임에도 이데올로기적인 오브제가 제외되고 비워진 홀. 그 미니멀리즘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전시관에 들어가기 전 한번 더 생각하게 하는 공간이다. 

전시관을 나와서

3층에서 전시관람을 마치면 동선은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이어진다. 12개의 매스 중 관람 동선의 끝에 놓인 이 매스는 불투명한 다른 매스들과는 달리 투명한 유리로 제작되었다. 계단이 바닥에 붙어있지 않고 기둥과 천장에 매달아 놓는 Suspension 구조로 설계한 것이 인상적이다. 

전시를 마치고 바로 외부로 나가버리는 구조가 아니므로 관람객은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잠시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역사책을 한 권 읽고 덮어버리는 것이 아닌, 과거에서 현재로 천천히 이동하며 과거에서 오늘날의 우리를 유추하는 묵상의 시간을 갖게 하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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